Dans l’atelier de Stella Sujin” - Beaux Arts Magazine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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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 Sujin – Nommée au Prix Drawing Now (Link)
March 2023
Next Code 2021 – Artist Talk with Stella Sujin Daejeon Museum of Art (Link)
October 2021
파리지성 Paris Jisung – "해체와 충돌, 그리고 변형을 그리는 경계인으로서의 예술가, 스텔라 수진 Stella Sujin"
August 2017
김은정 (eunjeong.kim3382@gmail.com)
스텔라 수진 Stella Sujin 은 이화여대에서 한국화를 전공, 철학을 부전공한 후 2008년부터 파리에 체류중이다. 파리 4대학에서 철학 학사 취득 후, 파리 1대학에서 조형예술 Arts Plastiques (l’art de l’image et du vivant) 석사를 취득, 2013년부터 현재까지 전시를 비롯한 작품 활동과 몽테뉴 보르도 3대학에서 예술 박사 연구/논문 과정을 병행하고 있다.
지난 7월 한달간 마레 지구의 ‘라 벨 오흐텅스(La Belle Hortense)’에서 열린 전시Natures Impures (2017.7.3 - 2017.7.31)에서 그녀를 만나, 이번 전시와 전반적인 작품 세계,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이번 전시에는 인간위상의 허약함이란 주제 아래에, 각기 독립된 싱글 피스로 제작된 동물 및 동물 잡종체 수채화 7점을 전시했다. Natures Impures는 한국어로 «불결한 본성»으로 번역이 가능하다. ‘Nature’는 ‘자연’과 ‘본성’이라는 두 의미를 가진 단어로, «순수한 하나의 본성»에 대조되는 «복수의 불결한 본성들»을 말하기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이화여대에서 한국화 전공 후 파리로 유학, 미술과 철학을 동시에 전공하셨어요. 동양의 외연에 서양의 내연이 깃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방법면에서는 수묵화, 고려 탱화의 방법이 보이는데 서양철학을 공부한 것이 작품에 내용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가 궁금합니다.
- 저에게 동양과 서양은 구분은 지리적인 것입니다. 동양은 제국주의 아래 서양의 반대쌍으로 만들어진 개념이구요. 두세계에 각기 고유한 문화와 사고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의식적으로 이 두 세계를 구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전공을 여러번 바꿨어요. 예고시절 조각으로 시작해서 서양화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다시 한국화로 전공을 바꿨죠. 조각과에 속해있는 한 회화를 배울 수 없고, 서양화과에서는 수묵화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간단한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시간은 철학과가 있는 인문대에서 보냈구요.
제 그림에서 보이는 수묵화의 느낌은 한국화의 경험에서 온 것이 맞아요. 하지만 저는 왼손잡이이기 때문에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하는 한국화의 필법을 재현하는 것에 큰 어려움이 있었고, 그래서 결국에는 배우지 않았습니다. 제 경우에는 학교 캠퍼스 안의 숲, 지엽사에서 받아오던 한지, 알록달록한 가루 염료들,세공사였던 아버지의 공방에서 보던 금을 음각한 공예품 등을 기반으로 미감을 구축했을거에요. 그리고 한국에서 자랐으니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요소를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04년 처음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에 관한 수업을 들은 이후 2010년까지 철학과 학생으로 지냈어요. 주체 철학에 관한 중요한 비판인 미셸 푸코에 관한 수업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구요. 하지만 이후 미술작업을 하면서 철학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인식하되, 특정 철학의 개념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 어떠한 것과도 거리를 두어 생각하라, 항상 어느 정도의 차가움을 견지하라, 이것은 철학으로부터 제가 배운 점이고 저의 태도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술의 언어는 상징과 은유의 체계입니다. 어느 창작자의 이야기가 유의미할 때는 그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신체’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엿보입니다. 정신과 의식을 사유의 중심으로 삼았던 전통적인 관념론에서 벗어나, 몸의 감각에서 출발하려 하는 메를로-퐁티의 ‘몸 현상학’의 영향일까요? 실제로 ‘신체’를 대상으로 삼은 일련의 작가들이 그러하기도 하구요. 질 들뢰즈의 ‘기관 없는 신체’가 떠오르기도 하고 혹은 거꾸로 ‘신체 없는 기관’ 으로 의미를 전도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작품 속에서 신체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기관들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는 각각의 기관이 맡은 역할을 충족시키며 조직화하여 만들어내는 억압 구조에 반대하는 신체죠. 역할 수행의 목적을 가진 유기체적인 방식의 조직화에 대립하기 위해 신체는 기관 없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구요. 제가 그리는 신체 없는 기관들은 비규정적인 잠재적인 가능성의 영역입니다. 그런점에서는 영향을 받았다고 말 할 수도 있어요.
제가 신체를 작업의 주제로 결정한 것은« 바디아트 Body Art »를 접한 이후입니다. 1960-70년대 유럽의 아방가르드 운동의 영향으로 탄생한 이 예술은 전통적인 예술형식과 재료를 거부하고인간의 신체를 예술의 무대이자 가장 순수한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저는 예술가의 신체에 직접 행해진 극단적인 실험으로 유명한 비엔나 행동주의(Actionisme Viennois) 그룹의 예술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신체를 노출하고 위험에 처하게 하고 결박하고 자해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고 파괴를 통한 심리적 해방을 추구하는 작품을 선보였어요. 내 작업에서 보이는 조각난 신체와 그것에 주어진 한계, 고통 등의 요소는 그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입니다
제가 그리는 절단된 신체, 몸에서 분리된 장기, 그리고 잡종 생명체들은 단련되고 균형 잡힌 훌륭한 신체를가진 인간으로부터 반대편에 있는 것들이에요. 내 몸에서 떨어져나와 덩그러니 놓인 ‘타자로서의 신체’에요. 정육점의 고깃덩어리처럼 조각조각 해체되어 걸려있는 날것으로의 존재, 그리고 날것으로서 맞이하게 되는 처연한 현실을 온전하지 않은 신체의 재현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궁극적으로 내가 잘라내려고 하는 것은 «건강한 몸에 깃든 건강한 사고»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에요. 현대 자본주의 국가가 만들어내는 노동하고 생산하고 소비하고 재생산하는 신체는 정교하게 훈련된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고생각해요.
바디아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셨는데요, 결과물 뿐 아니라 작업 방식이나 과정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 같은데요.
- 저는 신체의 형상을 그리기도 하지만, 사실 신체가 행하는 행위 자체가 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에요. 행위(퍼포먼스)와 회화는 서로 굉장히 다른 영역에 속하고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퍼포먼스는 전통적인 회화,조각의 형식을 거부하며 제도 밖에서 발생한 예술이고, 회화는 가장 전통적인 미술이면서 제도 안에 머무르고 있는 예술이에요. 본래 화가인 저에게는 이 둘의 접점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큰 고민이구요. 비약적으로 발달하는 기술과 함께 미술의 재료와 형식도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어떠한 정당성을 갖고 나는 회화를 고수하는가, 내가 하는 행위가 현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부단한 고민과 번뇌가 바탕에 깔려있어요. 그런데도 그리는 행위가 가진 특이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신체의 움직임과 그 자국을 물질에 아주 가까이 남기면서, 의지적인 예술 행위가 드로잉 안에서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회화는 켜켜이 물감의 겹을 더하고 터치를 남긴다는 면에서 어쩌면 깎고 다듬는 (Carving) 조각의 행위와 비슷하지만, 드로잉은 재료와 신체가 닿는 충돌의 순간을 남기는 행위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다만 사진처럼 기계가 아니고 인간이 직접 물질을 만지며 찰나를 파악하는 것이 드로잉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보는 이에 따라 완성작 혹은 습작이고, 작품의 초안인 밑그림일 수도 있습니다.
드로잉은 이러한 해석의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현대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2012년부터 «유기적 드로잉 Organic drawings»이란 프로젝트를 통해, 그리는 행위를 물질에 아주 가까이 붙이려는 목표에 조금씩 접근하고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데일리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상황에 따라 50장이든 100장이든 온종일 그리기도, 하루에 겨우 한 장만 그리기도 해요. 이 드로잉들은 각기 독립된 작품인 동시에, 각각이 세포 단위처럼 서로 결합하고 증식하며 하나의 «커다란 단위»를 만들 수 있게끔 고안했어요. 저는 마치 단어가 모여서 문장을 이루고 문장이 시를 이루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 «단위»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 그리는 대상은 따로 정하지 않고, 머리에 떠오르는대로 자유롭게 화면에 옮깁니다. 주제에서 너무 멀어지는 것을 피하려고, 동물 혹은 식물, 피부 혹은 내장, 인간 혹은 잡종체, 이런 식으로 큰 가이드 라인만 정해놓고 즉흥적으로 형상이 떠오르는 대로, 그러니까 브레인 스토밍과 비슷한 방법으로요.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메타포인 바니타스(Vanitas, 라틴어로 ‘덧없음’을 의미하며 ‘죽음’을 상기시키는 대상들로 나타남) 도 엿보입니다.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작품에 그 의미를 어떻게 담는지 궁금합니다
- 죽음은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잖아요. 보통은 죽음에 공포와 혐오를 느끼는데, 저는 죽음이 삶으로 회귀하게 하는 계기라는 생각에 더 무게를 두고 있어요. 이 둘은 서로 분리되면 양쪽 모두의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에 철저히 상호 의존적이라고생각합니다.
저는 신체를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생로병사의 인간드라마에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죽음이란 행사를 보다 더 유의미하게 치르고 싶구요. 이러한 이유에서 2014년에 «죽음의 치장» 이란 주제로 바니타스 양식의 대표적 상징물인 두개골에 성모 회보, 수태고지등 탄생과 부활을 의미하는 가톨릭 성화들을 접목하여 금분으로 회화 여러 점을 제작했어요. 다양한 문화권의 종교화들을 참고로 했어요. 그리고 이 «두개골 성화» 시리즈는 저의 과거와 연결되기도 해요.
집안의 전통이었던 가톨릭 신앙과 늘금을 만지던 세공사인 아버지의 이미지가 이 시리즈에 녹아있음을 나중에 깨달았어요. 때로는 죽음이 아주 가까이있다는 것을 경험해요. 두 번의 사건을 겪었는데, 공포에 질려서 떨고있는 제 모습을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렇게 비참하고 하찮을 수가 없었어요.
죽음 앞에서 태연하지 못할지언정최소한의 품위는 갖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서, 관련한다양한 이슈들을 주의 깊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육신의 죽음뿐 아니라 자아의 죽음이기도 하죠. 기존 작업을 통해 물리적인 차원에서의 죽음을 다뤄왔는데, 앞으로는 더욱 심리적인차원으로 그것의 의미에 접근하려고 합니다.
결국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보여요. 이 모든 표현 방식과 도상들이 의미하는, 즉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대주제는?
- 모든 시도를 압축하는 키워드는 미완결성이에요. 그리고 경계, 경계에 위치한 인간으로서의 불완전성, 그리고 해체,충돌, 변형이 제 작업의 기반이 되는 개념들입니다.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어요.
앞서 얘기했지만 한국에서 자라고 미술교육도 오랫동안 받았어요. 하지만 프랑스에서의 체류기간도 오래되었는데요, 그 경계에서 오는 정체성의 혼란, 예를 들면 한국화의 방법으로 서양의 재료로 그림을 그리는데서 오는 고민이나 어려움은 없나요
- 동서양의 구분이 이제는 어색하게 느껴져요. 경계인으로 살면서 그 사실을 잊고 사는 지금 오히려 이 익숙함에 대한 각성이 필요한 것 같을 정도로요. 저는 낯선 곳에 있기를 좋아해요. 동물적인 감각이 깨어나서 길을 찾고 마주치는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 즐거워요. 그래서 불편함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민자로서 차별을 받으면 힘들지만, 이 생활에는 단점보다 장점이 월등하게 많아요. 외줄 타기 광대처럼 경계선에 서 있는 것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서 느끼는 신선함, 그리고 자유가 있기 때문이에요. 사물을 다른 관점으로 보려는 예술가들에게는 타향살이가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완전히 한국인도 아닌 유럽인도 아닌 이 상태가 불편하지 않아요.
내 이름은 김수진, 작가명은 성을 떼버리고 동/서양식의 두 개의 이름만 합친 스텔라 수진이죠. 정체성을 극복하는 일을 하고자 하면서 “김”이라는 성을 가진 것이 짐스러웠어요. “김”은 내가 한국에서, 그리고 가부장제 시스템에서 왔음을 알려주는 표식이니까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문화적 잡종”인것 같아요.
작품을 감상하고 느끼는 바는 제 각각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작품에서 사람들이 느꼈으면 하는 점은?
- 작품은 관람자가 있을 때 의미가 완성돼요. 작가가 메시지를 전달, 혹은 주문하는 일방적인 관계에는 생동감이 없어요. 제가 하는 시도들을 ‘이런 시도도 있구나’ 하고 단순히 보고 원하는 대로 해석을 하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전시 활동을 하며 관람자를 통해 느낀 즐거운 기억이 하나 있어요. 2015년에 파리 근교 이씨레물리노(Issy-les-moulineaux)시에 위치한 에스파스 이카르(Espace Icare)라는 문화센터 로비에서 전시한 적이 있어요. 그곳을 오가며 수업을 받는 어린이들이 제 그림에 관한 의견을 내놓으며 그림 앞에 쪼르륵 모여앉아서 따라 그리고 자유롭게 본인들의 감상을 그려서 제게 선물하기도 했어요. 그때 어린이들이 무엇을 느꼈는지는 정확히 몰라요. 하지만 그들과 어떠한 공감이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어요.
현재 박사논문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있어요. 끝으로 논문 주제와 작업의 관계, 공부를 마친 후 계획을 알려주세요.
- 신체가 갖는 정치적인 의미와 동일성 문제, 특히 여성의 신체를 주제로 하여 모성과 관련한 이론들을연구하고 있어요. 박사과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 차원에서 하고 있는 것이어서, 마친 후에도 별다른 변화 없이 지금처럼 작품활동과 전시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미술작품을 본다(감상한다)는 것은, 작가의 눈을 빌어 전혀 다른 관점으로 세계를 보는 경험이다. 이러한 시감각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기만의 세계를 확장하고 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이 예술의 사회적 의미일 것이다.스텔라 수진의 세상은 인간에게 주어진 ‘몸’이라는 본질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에 구애받지 않고 몸을 통해 관계맺고 경계를 허물고 규정되어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이 ‘문화적 경계인’으로서 파리의 한국인들이 얻을 수 있는 하나의 메세지가 아닐까.